상품의 품질 이전에 브랜드 자체가 먼저 어필하는 시대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품질을 넘어 사용자들의 품격이나 라이프스타일까지 암시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애플이다. 이 회사는 제작한 제품을 판다기보다, 어쩌면 그들이 구현한 세계 자체를 파는 것 같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단순히 소비자라기보다는 그 세계의 시민, 때에 따라서는 노예(?)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도 브랜드로 팔린다. 힐스테이트, 자이, 푸르지오 등, 이색적인 명칭과 로고를 내세운 아파트가 주류이다. 오가는 상품도 아닌 부동산인 아파트에 브랜드라니.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브랜드 개념은 없었다. 심지어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브랜드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성의 래미안, 대림의 e편한세상으로 시작하더니, 이제 대기업 브랜드가 붙은 아파트 아니고는 꺼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다. 아파트는 엄연히 입지와 환경을 가리는 부동산이다. 같은 브랜드로 건설되었다 해도 서로 여건이 달라 동일한 상품은 있을 수 없다. 생산방식도 그렇다. 기업은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할 뿐, 실제 시공은 여러 하청 업체를 통해서 하곤 한다. 재료부터 완제품까지 기업이 책임지는 제조업 브랜드와는 달리 변수가 많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도 브랜드로 선택하곤 한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을 돌아다녀 보아도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브랜드가 지배하는 곳은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처럼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극심한 아파트 브랜드화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문제가 사실 없지 않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브랜드가 주택 가격에 거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광고만 보아도 그렇다. 이미지 메이킹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설사마다 으레 당대 최고의 배우를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매체를 가리지 않고 광고로 도배를 하곤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결국은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지나친 ‘명품화’ 추세이다. 브랜드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명품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극심한 경쟁을 벌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단지 안에 별의별 편의시설이 다 다 만들어진다. 과도한 조경시설은 물론, 운동시설이나 도서관, 심지어는 극장까지 있는 아파트도 적지 않은 지경이다. 물론 공짜일 리 없다. 역시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또 주변 상권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우려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할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한 브랜드 아파트가 속으로는 골병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에서 붕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1월에는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이파크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났고, 올해에는 GS건설이 짓던 검단 자이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건설사 두 곳이 1년여 간격으로 큰 사고를 내면서 브랜드에 대한 일방적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아파트 이름값에 숨겨진 허와 실을 제대로 보아야 할 때이다. 지금 와서 보면 아파트 브랜드에는 너무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 이어지는 사고는 이런 거품을 한 번쯤 정화해야 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인구감소와 빈집증가 추세 속에서 이제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언제 공동화라는 폭탄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아파트를 그저 재건축 연한만 지나면 헐고 새로 짓는 소모품으로 보는 인식도 문제이다. 결국, 건설사로 하여금 부실한 시공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건설문화, 그 전반에 대한 점검, 그리고 리모델링,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김주일의 도시탐험] 아파트, 이름 값한다 -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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