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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6, 2021

헤일로 인피니트 - 싱글 플레이어 캠페인 리뷰 - IGN Korea

비탄, 비탄, 비탄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343 인더스트리가 번지의 유산을 인수한 이래 헤일로 프랜차이즈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삼부작으로 끝났어야 하는 작품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했기 때문인지, 첫 공식 작품인 헤일로 4편부터 이상 조짐이 드러났다. 탐험과 신비가 중점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마스터 치프와 코타나라는 두 인물 간의 서사와 드라마가 중심이 되었다.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보장되는 샌드박스 구성 역시 레일슈터에 가까운 일자형이 되었을 뿐 아니라, 혹평을 받은 멀티플레이 역시 레일슈터로 유명한 콜 오브 듀티를 연상케 하는, 현세대 FPS에 가까운 형태로 개조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헤일로의 탈을 쓴 별개의 SF 게임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속단은 금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MS에서 헤일로만을 위해 설립한 회사라 한들 343 인더스트리는 신생 스튜디오였고, 외전인 헤일로 워즈 개발에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경력과 소설, 만화, 설정집 따위의 관련 부가매체 관리 이력을 제하면 헤일로 4편이 본인들의 데뷔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일로 4편까지만 하더라도 확정적인 평가를 보류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후속작은 예정대로 출시될 것이고, 이를 통해 343 인더스트리가 제시하고자 하는 "위대한 여정"이 어느 정도 시야에 들어온 이후에 평가를 내려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싱글 캠페인과 멀티플레이 모두 어딘가 한 박자씩 어긋난 모습으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헤일로 4. 간판을 떼고 본다면 수작 스페이스 오페라 FPS라는 평을 들었겠지만, 헤일로라는 이름값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다음 작품인 헤일로 5: 가디언즈에서 무참히 깨졌다. 헤일로 5편이 졸작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 질주 및 정조준과 같은 현세대 FPS의 업계표준을 헤일로와 적절히 혼합하여 헤일로 프랜차이즈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했으며, 멀티플레이 역시 콜 오브 듀티 아류작 같던 전작에서 탈피해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묵직한, 헤일로만의 재미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캠페인이었다. 과거 번지가 헤일로 2편에서 치프와 아비터를 번갈아 진행했던 캠페인을 벤치마킹해 343 인더스트리는 치프와 로크라는 두 인물을 등장시켰다. 전개 역시 치프가 이끄는 블루팀과 로크가 이끄는 오시리스 화력조가 주축이 되는 가운데, 저자와 후자가 서로 대립하며 진실에 다가가는 형태를 취했다. 다만 똑같이 새로운 등장인물임에도 아비터와 달리 로크는 플레이어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캠페인의 비중 자체도 오시리스 화력조에 치중되어 오히려 팬들이 기대하던 치프의 분량과 입지만 더욱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나마 스토리라도 만족스러웠다면 모를까, 발매 직전까지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데 일조했던 "진실 추적" 마케팅이 무색할 만큼 실제 스토리는 빈약했다. 헤일로라는 게임이 아무리 싱글 캠페인과 멀티플레이로 유저층이 양분되는 작품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경우는 이번이 최초일 정도로 헤일로 5: 가디언즈는 불균형한 작품이었다.

클래식 FPS와 현대 FPS 사이의 간극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 멀티플레이에 걸맞잖게 역대 최악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캠페인이 발목을 잡았던 헤일로 5: 가디언즈. 없느니만 못한 캠페인의 존재는 헤일로 프랜차이즈의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마스터 치프라는 영웅이 헤일로 프랜차이즈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런 "근본"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였던 헤일로 5: 가디언즈 이후 시리즈 전체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급기야 오랫동안 작품 소식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두 전작의 실패를 설욕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탓인지, 차기작인 헤일로 인피니트 역시 제작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343 인더스트리에서는 헤일로 4편에서부터 표방했던 “계승자 삼부작”이라는 대전제마저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프랜차이즈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상 헤일로 3편 이후를 기획하던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 출발 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단기간에 디렉터만 두 차례 교체되는가 하면, 원래라면 진작 속편이 발매됐어야 할 2018년에 실기 영상을 공개하기는커녕 게임 엔진 시범 트레일러만 간신히 얼굴을 내비쳤다. 게임 엔진과 게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상 발매가 지연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로부터 비로소 2년이 지난 작년 E3에서 공개된 캠페인 트레일러로 그 예측은 적중했다. 게임의 기틀은 잡혔지만 아직도 마감과 최적화가 미진한 상태임이 역력했고, 끝내 "브루트 크레이그(Craig the Brute)"라는 밈만 남기고 발매를 1년 연기했다. 헤일로 인피니트는 그런 풍파 끝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작품인 만큼, 게임사로서나 게이머로서나 감회가 남다른 작품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작의 실패가 너무도 뼈아팠던 탓일까? 헤일로 프랜차이즈의 "정신적 리부트(spiritual reboot)"를 자처하는 헤일로 인피니트는 기존 발매 주기의 두 배인, 전작의 발매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해묵고 익숙한 느낌

헤일로 인피니트의 첫인상은 익숙함이었다. 치프가 입고 있는 묠니르 전투복의 형태에서 시작해 방어막이 재충전될 때의 효과음, 조작감 조정을 위해 짧게 진행되는 전후좌우 시야 테스트까지, 헤일로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의 향수가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도 튜토리얼 구간을 끝내고 지표면으로 나온 플레이어를 반기는 헤일로 특유의 풍경은 실로 압권이다. 헤일로라는 제목답게 헤일로는 비중을 떠나 여느 작품에서나 무대로 등장했다. 그러나 제작사를 이관한 이래로는 실드 월드나 기타 행성에 자리를 내주게 되어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나 대사로만 근근이 명맥을 이었다. 그러다 헤일로 3편을 마지막으로 통 발을 디뎌 보지 못했던 헤일로를 무려 14년 만에 되밟는 감회란 감개무량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전경을 감상한 다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곳곳에 우뚝 서 있는 선조 건물. 마치 평행우주에 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전작과의 괴리가 컸던 4, 5편 속 선조 건물에 비하면, 헤일로 인피니트의 경우는 오히려 번지가 지금까지 헤일로를 제작했더라면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작을 훌륭히 답습/개량한 형태를 보인다. 이제껏 343 인더스트리가 헤일로에 자신들만의 색채를 덧씌우는 데 급급해 구작의 팬들과 적잖은 마찰을 빚었던 것은 물론 그 결과물도 신통찮았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조금만 더 일찍 이런 노선을 택했더라면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든다.

발매를 1년 연기한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플레이어가 헤일로에 있다는 현장감은 여느 때보다도 훌륭하다. 특히 주상절리 형태의 인공 토대는 헤일로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한편 독특한 풍광을 연출하는 데 일조한다.

그간 다소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헤일로라는 링월드는 마스터 치프와 더불어 헤일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과도 같다. 거대한 땅덩이가 점점 좁은 띠처럼 변하며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가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초현실적 풍경은, 헤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하건 꾸준히 플레이해 왔건 뇌리에 인화지처럼 각인되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헤일로의 정체와 그 용도를 익히 알기에 별다른 신비감이 없는 지금도, 낮과 밤 주기와 아련한 배경음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고개를 들어 헤일로 특유의 지평선을 바라보노라면, 헤일로: 전쟁의 서막을 처음 플레이했던 순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정도다. 물론 그때와는 색다른 광경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고리의 허리가 부서진 흔적, 먼발치의 산등성이에 거인의 시체처럼 드러누운 선조 병기 수호자... 헤일로가 아름다운 동시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간직한 장소임을 넌지시 귀띔해 주는 요소도 빠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눈에 보이는 지형의 상당 부분은 직접 답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계속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머리 꼭대기의 헤일로 반대편까지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여기에 그런 감각을 한층 고양해 주는 것은 주위에 조성된 인공 생태계. 원래 번지에서도 식물 외에 각종 야생동물을 구현하고자 했으나 크고 작은 제약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그 원안이 어언 20년 만에 이뤄진 셈이다. 헤일로를 플레이하며 느꼈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정신적 리부트의 의도였다면, 이 점에서 343 인더스트리는 이미 성공을 거뒀다.

헤일로 인피니트의 진행 방식은 샌드박스를 뛰어넘어 오픈월드에 가까운 구조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번지의 헤일로가 원래 구상했던 이상적인 원안에 가까운 형태이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김에 과거의 못다 이룬 꿈까지 이룬 격이다.

이렇게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진 헤일로에서 진행되는 임무는 기존의 헤일로 시리즈가 자랑하던 샌드박스를 뛰어넘어-비록 헤일로 4, 5편의 캠페인은 샌드박스라는 말도 무색했지만-오픈월드에 가까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우선 여느 캠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요 임무 목표가 있다. 이는 마스터 치프가 펠리칸 조종사 및 새로운 인공지능 동료 무기와 함께 지난 6개월간 제타 헤일로에서 벌어진 사건의 실마리를 캐는 과정으로, 말하자면 메인 퀘스트에 해당하는 선형 구조이다. 그밖에 전진작전기지, 배니시드 기지, 중요 목표, 지원을 요청하는 해병 분대 등이 있다. 이는 치프가 헤일로를 장악한 배니시드 주둔군을 격파하고 고립된 UNSC 잔존 세력을 규합하는 과정으로, 게임 진행이 메인 퀘스트 일변도로만 굳어지지 않고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지 않게끔 곁들이는 비선형 사이드 퀘스트에 해당한다. 빼앗긴 전초기지를 탈환해 빠른 이동 지점을 확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의 배니시드 기지를 소탕하거나 고립되어 분전하는 해병 분대를 지원하고, 겸사겸사 미니 보스에 해당하는 고가치 표적도 제거하는 식이다. 이런 보조 임무는 주요 임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이를 통해 묠니르 전투복 업그레이드에 드는 재화인 스파르탄 코어를 획득하고, 배니시드 병력을 격퇴해 얻는 용맹 점수로는 전진작전기지에서 각종 무기/차량을 요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헤일로 3편 이래로 빠지지 않았던 터미널 형태의 수집 요소는 오디오 로그의 형태로 부활해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 있다.

게임 진행을 다채롭고 속도감 있게 만들어 주는 일등공신은 바로 갈고리총. 멀거나 높은 곳을 순식간에 오가는가 하면, 적과의 거리를 좁히거나 장비를 낚아챌 때도 유용하다. 포탑이나 차량에 명중시키면 바로 탑승하거나 탈취할 수도 있어서, 이제 갈고리총 없는 헤일로는 상상조차 힘들다.

FPS 게임에서 메인/사이드 퀘스트라는 다분히 RPG적 용어를 쓰자니 생소한 감이 있지만, 그것만큼 명쾌하게 설명할 단어가 없을 정도로 이번 작품의 구성은 오픈월드에 가깝다. 플레이 성향에 따라 사이드 퀘스트에 발이 묶여 정작 중요한 메인 퀘스트가 뒷전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까지도 그런 면을 닮았다. 물론 343 인더스트리에서 밝혔듯 완전한 오픈월드는 아니며, 파 크라이 시리즈에서 곧잘 접하는 세미 오픈월드에 가깝다. 헤일로: 전쟁의 서막을 했던 게이머라면 튜토리얼을 겸하는 첫 번째 임무 직후 너른 지형을 돌며 고립된 생존자를 구하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순서대로 목표를 완수하는 임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그런 구간이 특정 임무에만 국한되었지만, 헤일로 인피니트에서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섬 전체를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멀티플레이에서 곧잘 연출되는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캠페인에서도 구현하고자 노력한 흔적 또한 엿보인다. 도보로 이동하건 차량을 이용하건, 혼자서 돌파하건 아군을 대동하건 어떤 방식으로든 공략이 가능한 각종 목표와 거대한 건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동하건 늘 적들이 출현해 심심할 틈이 없다(플레이어의 전투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적의 인공지능 역시 백미). 이렇듯 적당히 짧은 교전을 고루 분포해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점 역시, 번지 시절 헤일로 개발자 제이미 그리스머(Jaime Griesemer)의 철학인 "30초 재미 법칙"과 닮았다.

멀티플레이에서 곧잘 펼쳐지는 헤일로만의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싱글 캠페인에서도 접할 수 있도록 적절히 안배된 장치가 많다. 스크린샷 속의 맨 캐논(man canon) 역시 그러한 장치 가운데 하나.

하지만 낙인은 가려지지 않는군

시리즈의 원점으로 회귀함으로써 헤일로 인피니트는 게임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전작의 오명을 벗었다. 그렇다면 싱글 캠페인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어떨까? 원점 회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진짜 근본이었던 번지의 삼부작부터 잠깐 짚고 넘어가자.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헤일로는 본래 삼부작이 아니라 이부작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발매된 지 15년이 지난 작년에 스토리보드가 공개되면서 확실시된 바와 같이, 헤일로는 2편에서 지구를 무대로 하는 최종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번지의 여건상 속편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등장한 마침표가 대망의 3편이었다. 치프의 명대사 "이 전쟁을 끝내려 합니다"가 예고했듯, 전쟁의 서막이 기반을 깔고 2편을 통해 대폭 확장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성격이 짙었다. 처음부터 전작의 최종장을 부득이하게 게임 하나로 잡아 늘린 터라 초반부의 스토리가 다소 늘어진 감이 있기는 했어도, 전작에서 깔아 놓은 복선을 충실히 회수하며 삼부작의 완결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처음부터 삼부작을 기획한 것이 아닌, 헤일로: 전쟁의 서막이 예상치 못했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연장된 시리즈임을 생각하면 다소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말이었다. 그런 반면 343 인더스트리의 삼부작은 경우가 달랐다. 처음부터 황금알을 낳는 거위 프랜차이즈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확한 목적으로 출발했음에도 시작부터 불안하게 휘청거렸다.

번지의 삼부작이 그러했듯 343 인더스트리의 삼부작도 헤일로에서 대미를 장식했더라면 수미상관의 미라도 살았겠지만, 헤일로 인피니트는 부제 그대로 무한한 의문만을 남기며 무책임하게 끝을 맺는다.

그런 불확실한 행보의 원인을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조급함에 있다고 본다. 기성 프랜차이즈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과잉 때문이었을까, 343 인더스트리는 본인들의 실력과 존재 의의를 하루빨리 인정받고자 객기를 부렸다. 가장 먼저 헤일로에서 번지의 물을 빼고 자신들의 색을 칠하는 데 치중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각적인 괴리가 수없이 발생했음은 물론 스토리 자체도 방향성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앞서 헤일로 3편이 삼부작의 대단원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언급했지만, 그마저도 포괄적으로 봤을 때의 평이며, 온전히 매듭짓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산적해 있었다. 헤일로 4편은 전편의 연장선에 있음에도 이를 등한시한 채 플레이어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력과 갈등 구조를 내세우기 급급했다. 이어 헤일로 5: 가디언즈는 한술 더 떠서 4편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기는커녕, 너무도 진부하며 세계관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는 인공지능 반란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세계관 전체를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아넣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이렇게 된 데에는 번지 시절과 달리 작품별로 총괄 각본가가 달랐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출시되는 속편인 만큼, 헤일로 인피니트는 어떻게 해서든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마스터 치프와 파일럿, 인공지능 무기 삼인방의 호흡은 훌륭한 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좋은 평을 듣지 못했던 헤일로 4편의 캠페인도 치프와 코타나 사이의 감정적 유대만은 흠잡기 어려웠음을 생각하면, 이것도 입에 발린 칭찬에 가깝다.

아무리 전작의 실수를 만회하는 데 매진한들 그 간극이 온전히 봉합되기 어렵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만큼 전작이 남긴 숙제는 컸다. 그래서 속편에서 구색 맞추기로나마 마침표를 찍는다 한들 마스터 치프와 코타나라는 두 인물 간의 문제로 대폭 축소 종결되리라 예상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편이 특수부대의 비정규전을 세계대전으로 키워 버린 탓에, 결국 3편에 가서는 두 주연간의 사적인 원한으로 급하게 마무리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정신적 리부트라는 말에 걸맞게 시리즈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도 공평하게 배려해야 했던 탓인지, 헤일로 인피니트는 마치 탐정물처럼 진행된다. 코타나를 저지하고자 제타 헤일로에 도착한 항모 인피니티가 배니시드에게 기습을 당해 격침되고, 그 와중 마스터 치프는 우주 미아가 된다. 치프는 기약 없이 우주를 표류하던 중 펠리칸 조종사에게 구조되고, 선조 시설에서 인공지능 무기를 회수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스터 치프, 조종사, 무기 모두 사건의 주역임에도 6개월 전의 사건에서 동떨어져 있다. 이렇듯 제타 헤일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 캠페인의 큰 골자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마치 헤일로: 전쟁의 서막과 묘한 기시감이 든다. 리치 행성 전투의 패배를 뒤로한 채 무작위 좌표로 도약한 순양함 필라 오브 어텀이 헤일로라는 미지의 구조물에 도착해 그곳의 비밀을 파헤치는 전개와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첫 대면부터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마스터 치프를 압도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했던 새로운 적 하빈저. 그러나 실제 작중 행적은 전작의 워든 이터널에 비견되는 용두사미로 끝난다.

헤일로: 전쟁의 서막과 헤일로 인피니트의 구도는 유사해 보이나 서로 처한 처지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앞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신생 IP였으나 후자는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기성 IP다. 여기에 전작이 남긴 채무까지 짊어진 상태라면 적어도 이를 상환하려는 성의를 보였어야 옳으나, 이번에도 전작의 전철을 밟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본디 343 인더스트리가 기획하던 삼부작의 청사진이 이미 헤일로 5: 가디언즈를 거치면서 깨졌다고는 하지만, 좋든 싫든 순서상 헤일로 인피니트는 삼부작을 마무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지금은 코타나가 일으킨 피조물 사태를 뒤처리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 한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퇴행이 찾아온 것처럼 이미 헤일로 4편이 벤치마킹했던 헤일로: 전쟁의 서막 구도를 도로 빌려와서는, 전작에서 벌어진 은하계급 참사의 종착역으로 불과 직경 1만 킬로미터 구조물을 택했다. 이어 외전에서 등장한 진영 배니시드를 데려와 기존의 스톰 코버넌트를 대체할 명실상부한 주력 적대세력으로 격상시켰다. 선조 프로메테안이라는 진영을 출연시켰다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전례를 생각하면 껄끄러울지언정 이해는 가는 선택이다. 그런데 왜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빈저라는 전대미문의 위협까지 등장시켰을까? 재차 강조하지만 당장은 피조물 사태의 후폭풍을 잠재우는 것만도 급한데,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여유를 부려도 되는 상황일까?

작중에서 마스터 치프가 좌절한 조종사를 다독이며 건네는 격려사. 그러나 메타적으로 접근한다면 치프라는 인물의 내면적 성장을 반영한다기보다는, 마치 343 인더스트리가 본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말처럼 들릴 지경이다.

제대로 수습하기에는 전작의 충격적 결말이 너무도 거대했으니 그 규모를 대폭 축소시킨 처사는 십분 이해한다. 근본적으로 헤일로 5: 가디언즈의 결말 이후 UNSC를 기다리는 운명은 영화 매트릭스 세계관 속 인류에 버금가는 암담한 처지였을 테니까. 곧잘 기억상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JRPG 주인공처럼 마스터 치프에게 반년이라는 공백을 준 것도 결국은 제한된 시야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으리라. 그러나 "녹색 남자와 푸른 여자"라는 시리즈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추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의혹만 증폭시킨다면 경우가 다르다. 전작이 남긴 숙제는 날림으로 해치우고 입맛대로 써 내려간 서사는 위태로운 사상누각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문제를 문제로 덮는 눈 가리고 아웅의 연속 가운데, 343 인더스트리는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끊어내고 희석하려 몸부림을 친다. 전작은 자신들의 작품이 아니라고 호소하며, 애써 호적에서 파내려 들고 있다. 다만 이런 미봉책으로 4편과 5편에서 이미 쓰라린 실패를 맛보지 않았던가? 얼마나 더 일을 키워야 무리한 세계관 확장은 역효과만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이럴 바에야 정신적 리부트를 자처하며 생색낼 것이 아니라, 아예 깔끔하게 리부트를 선언하는 편이 나았으리란 생각이다. 도저히 풀래야 풀 수 없을 정도로 스토리가 산으로 가 버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헤일로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헤일로 인피니트의 주제는 다름 아닌 희망이다. 그러나 마스터 치프가 아무리 동분서주한들 수습될 가망이 없는 스토리를 보노라면, 치프는 시시포스처럼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다시 한번 영광을

"일어나요, 치프. 당신이 필요해요." 삼부작으로 막을 내렸던 번지의 헤일로에 다시 불씨를 지폈던 코타나의 대사다. 번지 이후의 헤일로에서는 플레이어와 동격이었던 마스터 치프에게 별도의 개성이 부여되며 플레이어와 분리되기 시작했고, 인공지능 동료 코타나 또한 이전에 비해 많은 조명을 받게 되었다. 게임의 도입부에서부터 인공지능의 한계 연한으로 말미암은 죽음을 앞둔 시간 싸움이 시작됐고, 이것이 마치 불씨가 붙은 도화선처럼 게임 내내 치프와 코타나 일행을 따라다녔으며, 이는 급기야 속편인 헤일로 5: 가디언즈에서 시리즈의 존망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헤일로 인피니트 또한 그런 전작이 깔아 놓은 도화선 위에 있으며, 팬들의 관심사 역시 충격적인 결말로 끝난 전작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쏠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요소의 쇄신에만 매달린 탓에 가장 부족하며 개선이 시급한 스토리상의 허점은 고스란히 남았고,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아쉬움이 크게 남는 속편이 되고 말았다. 전작에서 칭찬받던 점과 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점만 적당히 취합한 누더기 같다고도 하겠다. 헤일로 인피니트가 갖춘 FPS로서의 재미는 이미 무료 공개된 멀티플레이로 직접 체험 가능하니 따로 부연하지는 않겠다. 돌아온 클래식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만큼 싱글 캠페인에서도 헤일로만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된다. 그럼에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어딘가 기존의 헤일로와 동떨어진 외전 같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려웠다.

정신적 리부트의 일환으로 시청각적 양식을 쇄신하고, 팬들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여 기존의 삼부작에 근접하는 모습을 되찾은 것은 좋았다. 분명 복고풍임에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헤일로다운 배경 묘사를 차세대기로 재탄생시킨 노력도 흠잡을 데가 없다. 오픈월드라는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헤일로만의 색채를 전혀 잃지 않으면서 절묘하게 혼합한 시도 역시도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시리즈를 계승/발전시키는 시도는 전작과의 연계가 불투명한 캠페인 스토리텔링으로 말미암아 반쪽짜리 성공에 그쳤다. 시청각적 묘사는 드디어 제자리를 되찾았지만 정작 서 말 구슬을 꿰어 줄 스토리는 여전히 에베레스트 등반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비록 헤일로 5: 가디언즈처럼 과녁을 아예 빗나간 것은 아니지만 종합적으로 평했을 때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큰 것이 사실이다. 헤일로 인피니트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는 말의 본보기와도 같은 작품이다. 헤일로 4편이 작품의 미래 행보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여파가 눈덩이처럼 굴러 끝내 게임을, 나아가 프랜차이즈 자체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제작진이 그렇게 절치부심하며 6년이라는 오랜 휴지 끝에 선보이는 속편임에도, 미적지근한 평가를 면치 못했던 두 전작과 마찬가지로 장단점의 명암이 극명히 갈리는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헤일로 인피니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희망이었다. 헤일로 프랜차이즈에 과연 희망은 남아 있을까?


정호운은 국내 출간된 헤일로 소설 시리즈의 번역가이자, '에른스트'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헤일로의 오랜 팬이다. 14년 동안 운영 중인 그의 블로그 Point of no return에서 다양한 헤일로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이미 전작에서 거의 완성된 슈팅 메커니즘을 한층 다듬고, 여기에 오픈월드 진행방식을 헤일로에 맞게 접목시켰다. 전작의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시청각적 구성과 헤일로만의 감각을 현대적으로 다듬은 슈팅 감각은 클래식의 귀환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전작이 남긴 숙제를 등한시한 채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기존 스토리와의 연계성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 자체의 재미는 부정할 수 없지만, 스토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단점은 여전히 343 인더스트리 헤일로의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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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 인피니트 - 싱글 플레이어 캠페인 리뷰 - IG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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