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문자 폭탄은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노태우, “최루탄은 민주주의의 양념이라고 생각”이 원조
과거 ‘양념’ 덕 본 입장에서 ‘고춧가루’ 피해자로 바뀐 상황
정치권에 양념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다. 양념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해 쓰는 재료, 즉 깨소금, 파, 마늘, 된장, 간장, 향신료 등’이다. 비유적으로는 ‘흥미나 재미를 위해 덧붙이는 재료’를 말한다. 어떻게 보아도 좋은 뜻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귀농(?)살이를 하는 양산 사저 앞에 진을 치고 온갖 욕설과 험담으로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하면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라고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전직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까지 했겠는가.
지방선거 패배와 관련해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한 홍영표 의원에게 ‘개딸(이재명 강성 지지층)’들의 문자 폭탄과 대자보 공세가 장난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의 소란행위와 문자 폭탄 세례에 대해 누군가 ‘민주주의의 양념’이라고 한다면 ‘피해 호소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럴 때 편리한 것이 과거의 사례이다.
지난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말했다. 양념은 배추를 김치로 만들어주는 좋은 것이므로 사실상 옹호, 더 나아가 장려를 한 것으로 해석되었고, 실제로 이 ‘교시’에 고무된 문빠들의 기세는 임기 5년 내내 더욱 맹위를 떨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념론의 효시가 문 전 대통령인 줄 알지만, 그보다 30년 전인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가 이 단어를 정치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6월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김대중-김영삼의 단일화 실패에 따라 1노3김이 모두 출전한 13대 대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영삼이 광주역전 유세에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김대중이 대구 유세에서 역시 돌팔매질을 당하는 등 지역감정이 극심했다.(물론 이런 것들이 모두 5공 정권의 음모라는 시각이 있다.)
총성 없는 내전이나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의 광주 송정역전 유세에서 최루탄이 돌발했다. 경찰이 쏜 것이 아니라 6월항쟁 때 주워 놓은 최루탄 한 발을 일반시민이 노태우 후보를 향해 던진 것이다. 유세장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불문가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망치는 이런 불법행위는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배후를 철저하게 가려내서 발본색원 하겠다” 보통 군 출신 정치인이라면 위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 노태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루탄은 민주주의의 양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즉흥적 한마디는 반노태우 성향인 필자의 가슴에도 와 닿았다. 후추(pepper)와 최루탄(pepper fog)의 같은 어원도 절묘하지만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넉넉한 유머가 돋보였다.
같은 말이라도 그로 인해 덕을 보는 사람이 하는지 피해자가 하는지에 따라 정반대가 된다. 바로 양념론이 그렇다. 지금 친문계가 개딸들의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미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고춧가루 뿌린다’고 할 때의 고춧가루라고 여기지 않을까. 과거 ‘양념’의 덕을 본 입장에서 ‘고춧가루’의 피해자로 바뀐 상황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필자가 문자 폭탄이나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소란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런 비지성적 행위를 명백히 반대한다.
‘Spice up your life(당신의 인생에 양념을 뿌려라)’ 영국의 유명 걸 그룹 스파이스걸스가 2012 런던올림픽 폐막식에서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음식에 양념을 넣어야 맛깔스러워지듯이 우리 삶에도 양념이 들어가야 아기자기한 삶이 된다. 만일 이렇게 유용한 깨소금, 파, 마늘, 된장, 간장, 향신료 등이 뭉쳐서 ‘양념연합회’를 만들면 한국정치권을 양념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이런 상상도 인생의 양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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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양념에 대한 명예훼손죄 -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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