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래는 최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촬영한 목성의 사진이다. 목성 주변에 희미하게 그려진 고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목성과 토성, 그리고 천왕성과 해왕성 같은 거대한 가스 행성들은 주변에 모두 고리를 갖고 있다. 지구 같은 작은 행성에 비해 훨씬 강한 중력으로 주변에 아름다운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이런 고민이 든다. 중력이 더 강해서 더 큰 고리를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중력이 가장 강한 목성이 제일 크고 아름다운 고리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실제론 중력 1등 목성이 아니라 2등 토성이 제일 뚜렷한 고리를 갖고 있다. 토성보다 더 중력이 강한 목성은 그 곁을 도는 탐사선이 아니고서야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고리만 갖고 있다. 왜 목성의 고리는 토성보다 더 희미한 걸까? 여기엔 뜻밖의 사연이 숨어 있다.
중력이 더 강한 목성이 왜 토성보다 훨씬 희미한 고리를 갖게 되었을까?
우선 한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중력이 아주 강한 거대 가스 행성만 고리를 갖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훨씬 덩치가 작은 소행성이나 왜소행성도 조건만 맞으면 고리를 가질 수 있다. 목성과 해왕성 사이 궤도를 돌고 있는 왜소행성 커리클로는 200~300km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다. 이런 작은 커리클로도 주변에 먼지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고리를 두르고 있다.
2014년 천문학자들은 커리클로가 움직이는 동안 멀리 배경 별 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엄폐 현상을 쭉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커리클로가 지나갈 때마다 그 직전과 직후에 연이어 별빛이 함께 가려지는 것을 확인했다. 커리클로 주변에 고리가 빙 둘러져 있다는 증거다. 천문학자들은 커리클로가 현재의 궤도로 진입하기 훨씬 전 태양계 가장자리 카이퍼벨트를 떠돌던 당시 주변에 있던 부스러기를 끌어모아 지금의 고리를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토성과 천왕성 궤도에 걸쳐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또 다른 소행성 키론도 그 주변에 뚜렷한 고리를 갖고 있다. 시간에 따라 살짝 다른 각도로 고리가 기울어지면서 키론 주변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멀리 태양계 외곽 카이퍼벨트를 돌고 있는 왜소행성 하우메아도 주변에 위성뿐 아니라 고리를 같이 갖고 있다.
이처럼 태양계 끝자락 얼음 덩어리 천체들 주변에서 가끔 아주 둥근 고리가 발견된다. 목성이나 토성에 비해 훨씬 중력이 작은데도 꽤 선명한 고리가 존재한다. 목성, 토성은 자신의 압도적인 중력으로 주변에 있는 다른 부스러기들을 붙잡으면서 고리를 만들었다면, 이런 작은 얼음 덩어리 천체들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부서져 떨어져나가면서 그 곁에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왜소행성 자체 질량의 10% 정도까지 떨어져나가 고리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왜소행성들에 비해 압도적인 고리를 자랑하는 행성은 단연 토성이다. 토성의 고리는 대부분 얼음 부스러기다. 토성 곁을 맴돌았던 카시니 탐사선은 토성의 고리를 이루는 얼음 대부분이 토성 곁을 돌고 있는 얼음 위성에서 제공된다는 걸 확인했다. 토성의 강한 중력으로 인해 그 주변 엔셀라두스와 같은 얼음 위성의 표면이 갈라진다. 그리고 그 내부 바다가 우주 공간으로 뿜어 나오며 토성 주변으로 얼음과 물이 제공된다. 그렇게 빠져나온 얼음들이 꾸준히 채워져 지금의 토성 고리가 되었다. 토성의 고리는 넓고 거대하게 펼쳐져 있지만 그 두께는 굉장히 얇다. 고리 전체 질량도 아주 가볍다. 고리를 이루는 부스러기를 다 모아봤자 가장 큰 소행성 세레스 질량의 겨우 0.015퍼센트밖에 안 된다.
꾸준히 얼음 위성에서 물질이 제공되는 속도와 현재 고리의 질량을 비교하면 이 고리가 대략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나이를 유추할 수 있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당연히 토성이 처음 태어났던 45억 년 전부터 고리도 같이 존재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2019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최근 분석에 따르면, 토성 고리의 나이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겨우 1억 년. 공룡과 거의 동갑이다! 지구에 공룡이 살던 즈음이 되어서야 토성 주변에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토성이 지금까지 살아온 전체 세월을 모두 생각해본다면 토성을 단순히 ‘거대한 고리 행성’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지 모르겠다. 사실상 토성이 지금까지 존재한 전체 기간 중 지금 같은 거대한 고리를 갖고 있는 기간은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반면 목성의 희미한 고리는 얼음이 아닌 암석 부스러기로 채워져 있다. 목성 곁을 맴돈 갈릴레오 탐사선은 목성 주변을 맴도는 암석 위성에 운석이 충돌할 때, 그 부스러기가 목성 곁에 붙잡히면서 고리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목성 주변 가니메데와 같은 덩치 큰 위성의 파편들이 목성 고리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런데 목성은 토성보다 중력이 강한데도 대체 왜 이런 덩치에 안 어울리는 희미한 고리를 갖고 있는 걸까? 왜 목성보다 살짝 더 가벼운 토성이 목성보다 더 큰 고리를 갖게 된 걸까?
최근 목성과 토성 주변 고리에 숨겨진 사연을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행성 주변에 고리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단순히 행성 자체의 중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리와 함께 행성 곁을 맴도는 덩치 큰 위성의 존재도 고리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나치게 덩치 큰 위성이 많이 돌면 오랫동안 고리가 유지될 수 없다.
토성 곁을 도는 가장 큰 위성 타이탄은 토성에서 약 120만 km,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타이탄은 토성 고리에게 강한 중력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토성 고리를 잘 보면 고리 사이사이에 벌어진 틈, 간극에서 돌고 있는 작은 위성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이 위성들은 토성의 고리가 꾸준히 유지되도록 역할을 한다.
고리보다 살짝 더 안쪽을 도는 위성은 고리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반대로 고리보다 살짝 바깥을 도는 위성은 좀 더 느리게 돈다. 고리 안쪽에서 더 빠르게 도는 위성은 고리 물질을 더 안쪽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동시에 고리 바깥에서 더 느리게 도는 위성은 다시 고리 물질을 바깥으로 끌어당긴다. 고리 안팎에서 함께 서로 다른 속도로 도는 위성끼리 경쟁하면서, 결국 고리는 안과 밖 어느 쪽으로도 끌려가지 못하고 계속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고리 안팎에서 고리의 대형을 유지해주는 양치기와 같다고 해서 이런 위성을 ‘양치기 위성’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토성의 가장 바깥 F 고리 안팎을 지키고 있는 두 위성,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가 있다.
반면 목성 곁엔 아주 덩치 큰 위성이 무려 네 개나 돌고 있다.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이들은 거의 달에 맞먹을 만큼 크기가 크다. 천문학자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자신의 망원경으로 발견한 갈릴레오 위성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타이탄의 경우보다 모행성에 훨씬 더 가까이 붙어서 돌고 있다. 가장 안쪽 위성 이오는 목성으로부터 겨우 40만 km 떨어져 있다. 이번 논문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런 덩치 큰 위성들은 불과 1000만 년 만에 고리 물질 대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다. 덩치 큰 위성의 강한 중력적 간섭으로 인해 목성 주변에 존재하던 고리 물질은 결국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며 뿔뿔이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주 희미한 고리 일부만 남게 되었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행성의 덩치가 더 크면 더 강한 중력으로 더 두꺼운 고리를 가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덩치가 큰 행성은 그 주변에 커다란 위성도 같이 가질 수 있다. 큰 위성들은 고리가 오래 유지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나치게 덩치가 큰 행성은 아주 큰 고리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 절묘하게도 토성은 주변에 많은 부스러기를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중력이 강하면서도, 아예 고리를 파괴할 만한 덩치 큰 위성이 여러 개 만들어질 만큼 중력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았다. 그 절묘한 최적화의 조건을 갖춘 덕분에 토성은 거대한 고리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도 영원하진 않다. 앞선 카시니 탐사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토성의 고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토성의 강한 자기장을 따라 토성 주변 안쪽 고리의 물질부터 토성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시간당 올림픽 수영장 두 개를 채울 만한 많은 양의 얼음 부스러기들이 흘러들어가는 중이다. 지금 속도라면 앞으로 약 3억 년 뒤 토성 고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현재 토성 고리의 나이가 약 1억 년. 그리고 앞으로 3억 년 뒤 사라진다면 토성의 고리는 총 4억 년만 존재하는 셈이다. 마침 우연히도 우리가 토성의 멋진 고리를 구경할 수 있는 운 좋은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고리는 태양계 행성들뿐 아니라 멀리 외계행성 주변에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지구에서 약 430광년 떨어진 J1407b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행성이 중심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동안 별빛이 아주 복잡하게, 또 여러 번에 걸쳐 밝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 독특한 별빛의 밝기 변화 패턴을 설명하려면 별 주변에 아주 거대한 고리를 두른 외계행성이 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놀랍게도 이 행성 주변 고리는 총 37개로 구성되어 있고, 그 크기만 토성 고리의 거의 600배가 넘는다. 행성의 거대한 고리가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잠깐씩 별빛이 가려지지 않고 원래 밝기로 관측되는 구간들이 있다. 이것은 토성 고리처럼 거대한 고리 사이사이에 빈 틈,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성의 경우처럼 이 고리의 간극도 작은 위성들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흔적이라 볼 수 있다.
거대한 고리는 한 행성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그만큼 고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까다롭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고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저 거대한 목성도 실패했고, 토성도 잠깐은 고리를 갖고 있지만 길어야 겨우 4억 년밖에 누리지 못한다. 우리는 마침 태양계 외곽 거대 가스 행성 모두에게 크고 작은 다양한 고리가 공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태양계를 보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참고
https://www.science.org/doi/full/10.1126/science.aat2965
https://www.quantamagazine.org/are-saturns-rings-really-as-young-as-the-dinosaurs-2019112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876-y
https://agupub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029/GL013i008p00773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2arXiv220706434K/abstract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800/2/126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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