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계에는 오래된 궁금증이 있다.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원자핵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다. 자연계에 양성자만으로 구성된 원자핵은 있지만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원자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국제공동연구팀이 중성자 4개로만 이뤄진 핵(테트라 중성자)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발견된 테트라 중성자는 핵물리학에 큰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원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다.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다.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작은 공간에서 두 핵자가 만들어 내는 조화는 다채로우면서 신비하다.
원자 하나의 크기를 운동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원자핵의 크기는 축구공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양성자와 중성자는 어떻게 모여 있을 수 있을까.
양성자들끼리는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 밀어내는 전자기력(척력)이 작용한다. 서로 밀어내는 자석을 뭉치게 하려면 자석의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전하가 같은 핵자를 뭉치게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양성자 사이의 전자기력을 극복하고 원자핵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핵자-핵자 상호작용’ 혹은 ‘잔류 강한 핵력’(본문에서는 간략하게 ‘핵력’으로 표현)이라고 한다.
지금껏 중성자 핵을 찾지 못한 이유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원소를 나열한 주기율표의 첫 시작은 원자번호 1번인 ‘수소(H)’다. 수소는 양성자 하나가 원자핵을 구성한다. 양성자의 수명은 무한하기 때문에 자연계에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원자핵이 있다면, 원자번호는 0번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원자핵은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중성자는 양성자로 변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중성자는 반감기(약 614초)가 지나면 절반이 양성자로 변한다.
중성자가 원자핵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양성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 수소를 빼면 모든 원자의 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함께 있다. 가령 중수소(²H)의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각각 하나씩 있다. 중수소처럼 핵력으로 양성자와 중성자가 떨어지지 않고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속박 상태’라고 한다.
중성자가 양성자와 함께 있을 때 속박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은 고유 각운동량 덕분이다. 핵자들은 고유 각운동량이란 내재적 특성이 있다. 원자핵을 이루는 핵자들의 고유 각운동량 방향이 반대면 안정한 핵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양성자-양성자 또는 중성자-중성자처럼 고유 각운동량의 방향이 같은 핵자로만 이뤄지면 속박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자연계에서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구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자 단위보다 큰 규모에서는 중성자 위주로 이뤄진 시스템을 찾아볼 수 있다.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초신성 폭발로 만들어지는 ‘중성자 별’이 대표적이다. 중성자 별은 중성자의 밀도가 매우 높다. 중성자 별의 강한 중력은 내부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하지 않고 뭉쳐있게 한다.
중이온 가속기에서 '10의-22제곱'초 간 존재한 중성자 핵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핵이 존재할 수 있을지 여부는 핵물리학계의 오랜 궁금증 중 하나였다. 최근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됐다. 독일 다름슈타트 공대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 등 국내외 25개 기관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이 4개의 중성자만으로 만들어진 핵(테트라 중성자)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테트라 중성자 연구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RIBF (Rare Isotope Beam Factory) 중이온 가속기가 사용됐다. 첫 번째 목표는 일반적인 원자핵보다 중성자가 많은 ‘중성자 과다핵’을 만드는 것이었다. 중이온가속기에서 산소-18(O) 이온을 베릴륨 금속에 충돌시켜 헬륨-8(He)을 만들었다. 헬륨-8의 핵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6개로 이뤄져있다. 자연계에 흔히 있는 헬륨(헬륨-4)보다 중성자가 4개 더 많다.
연구진은 헬륨-8을 양성자 표적과 충돌시켰을 때 헬륨-4와 테트라 중성자로 분리돼 약 '3.8×10의 -22제곱'초라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테트라 중성자, 핵물리학의 큰 전환점 될 수도
새로운 발견은 늘 연구자들을 즐겁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지식이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발견은 핵력부터 중성자별의 모델까지 현대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핵물리 분야가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핵력을 계산할 때 중성자만으로 이뤄진 경우는 계산하지 않았는데, 테트라 중성자를 발견하면서 핵자 간의 여러 상호작용에 대해 더 넓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테트라 중성자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우선 테트라 중성자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핵력 이론을 크게 수정해야 한다. 또 테트라 중성자의 공명 상태(*)가 중성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양자 물리학적 작용 때문에 나타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과학적 이론과 다르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다. 과학적 이론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증거가 튼튼하게 뒷받침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껏 과학자들이 품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핵자 간의 힘을 고려한 이론적 모델과, 더 다양하고 정밀한 실험 결과가 필요하다. 새로운 실험 결과를 두고 핵물리학자들이 과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나갈지,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된다.
*공명 상태 : 양성자와 중성자 등 핵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는 상태. 공명 상태가 나타나면 핵자가 속박됐다고 볼 수 있다.
※필자소개
김다히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 박사후연구원·안득순 연구위원·한인식 연구단장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에서 각각 박사후연구원, 연구위원, 연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9년 출범한 희귀 핵 연구단은 희귀 핵과 무거운 원소의 특징과 기원 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리미엄 리포트] 양성자 없는 기묘한 원자핵 발견 -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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