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위댄스’는 이경규와 홍재진이 2014년에 결성한 2인조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름이다. 부부이자 동료인 이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접점과 그것의 정취”에 관심을 두고 심미적 사물들을 만들어낸다. 삶 속에서 발견한 특정 순간들, 바깥세상의 커다란 자연을 실내 공간으로 끌어와 자신들의 손길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두 사람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에서 수학했다. 홍재진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부 재학 때부터 서로 취향과 생각이 잘 맞아 자연스럽게 공동작업을 하게 됐다. 쉘위댄스라는 이름으로 2017년 MRGG, 2022년 공간 카다로그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선보였고 플랫폼엘, 대림미술관, 페리지갤러리, 취미가, 드로잉룸 등 다수의 기관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아모레퍼시픽, 미도파 커피 하우스, 논픽션, 힌스 등 상업 브랜드 쇼룸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자연을 길들여 가꾼 ‘분재’처럼… 쉘위댄스의 오브제들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대학원생이던 홍재진은 자신의 다섯 평 원룸에서 조그만 사물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조각 난 햇빛을 찬란하게 흩뿌리는 모빌과 창가 커튼을 두드리던 바람의 모양을 본뜬 오브제 같은 것들이다. 그가 2020년 나이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이야기했다.
“흔들리는 커튼을 보면서 가만히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제가 생각하고 있던 상념들이 커튼에 맺혀서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갑자기 매일 보던 커튼이 낯설게 보이고, 새로운 이미지로 느껴지는 거죠. 그럴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수집해 두었다가 작업으로 표현하고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반투명한 아크릴릭 소재로 만든 물결 모양 오브제는 ‘블랭크 윈드(Blank Wind)’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새삼 그것이 바람을 데려다 기른 분재임을 깨닫는다. 이경규는 ‘블랭크 윈드’가 “빛과 바람을 캐스팅한 형태로, 무형의 것을 분재화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비정형적인 곡선을 지나 실내공간에 머무는 빛은 그 위에 선명하게 맺히기도 하고, 흐릿하게 보이기도 하며, 그림자로서만 드러나기도 합니다. 빛과 오브제의 상호작용은 표면의 투명도와 굴곡, 그리고 보는 이의 시선 방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단단한 사물의 굽이치는 표면으로부터 바람의 유연함을, 빛의 눈부심을 끊임없이 연상하는 것이다. 소담한 정원에 키운 분재를 돌보며 바깥의 커다란 자연을 생각하는 일처럼.
◆쓸모없는, 다만 스스로 아름다운 ‘잡초 꽂이’
쉘위댄스의 사물들은 처음부터 그 쓰임새나 정체가 모호하게끔 만들어졌다. 이경규는 그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램프, 꽂이, 받침 등의 미약한 쓰임새로 내 주변에 들어와 어우러진다”고 했다. 자리 잡는 장소에 따라, 또 관계 맺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른 모양새와 쓰임새로 거듭나는 물건들. ‘블랭크 윈드’ 연작은 탁자 위에 놓여 꽃을 꽂는 거치대가 되었다가 벽면에 가로누워 선반으로 탈바꿈하는가 하면 층층이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레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견고한 일상의 풍경에 저마다 조그만 균열을 낸다. 활동 초기에 다양한 형태로 제작한 ‘잡초 꽂이’ 연작은 조각 난 돌멩이를 재료 삼아 만들었다. ‘쓰임새’의 범주 안에 들지 못해 길 위를 떠돌던 돌의 파편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물건으로서 거듭난 것이다. 그에 부여된 용도라 함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도록 만든다. 잡초를 실내에 꽂아 두고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다만 이들의 손길을 거쳐 태어난 ‘잡초 꽂이’의 생김새를 마주하자 납득하게 됐다. 꽃송이의 싱그러움은 이내 까맣게 변색되지만, 애초에 무던한 들풀의 생김새는 시든 후에도 처음의 모습 그대로다. 그간 마른 들풀 특유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무심하게 지나쳐 왔다.
쉘위댄스는 처음부터 ‘쓸모없는 물건들’을 만들고 싶었다. 실용적인 쓰임새가 없거나 혹은 적더라도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지닌 사물들을 말이다. 디자이너로서 창작물의 쓰임새에 관한 고민을 지속하는 한편 순수한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지닌 창작을 추구하는 면모다.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을지언정 우리에게 바라봄의 기쁨을 제공하는 그런 물건들. 그렇기에 소유한 이들로 하여금 합리적 이유 없이도 아끼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나아가 사물의 소박한 쓸모를 스스로 찾아내도록 제안하는 오브제들.
그러한 창작 의욕은 두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보통의 직장인처럼 날마다 출퇴근을 반복하면서도 일과를 마치고 나면 ‘쓸모없는 물건들’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다. 오직 의식주에 필요한 요건들을 갖추는 데 집중하는 살아감은 효율적이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매일의 성실함 가운데 조금의 숨구멍을 마련하는 일, 잠깐의 쓸모없는 것들에 정성을 쏟아붓는 일. 사실은 그 자체가 이들 작업 나름의 쓸모이고 쓰임새다.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도 같다.
저마다의 오브제들은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며 작품세계를 키워냈다. ‘블랭크 윈드’로부터 파생된 ‘블랭크 더스트(Blank Dust)’는 아크릴릭으로 구불구불한 선형의 형태를 만든 후 모빌처럼 매다는 형태로 선보였다. 끝자락의 황동봉 꽂이에 가느다란 잎사귀를 꽂아 둘 수 있다. 또는 그저, 빛과 오브제가 만나 만들어내는 벽면 위 그림자를 감상할 수도 있다.
◆장소의 공백을 채우는 방식… 바람과 먼지의 다녀감에 주목하기
쉘위댄스에게 작업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둘 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바람을 쐬는 일을 좋아합니다. 주로 일상의 날씨와 자연현상 등을 바라보며 감흥을 기록합니다. 사소한 찰나의 움직임, 희미한 것,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려고 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이후 거주하는 집의 규모가 커지고, 을지로에 작업실을 얻는 등 생활공간이 확장되자 작업의 크기도 변화했다. 오브제의 규모를 키우니 장소를 점유하는 존재감도 커졌다. 주로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규모로 제작되었던 ‘블랭크 윈드’ 연작은 때로 1m가량의 크기로 확대되며 실내 공간에 세워 두는 조명으로서 역할하기도 한다. ‘블랭크 더스트’의 곡선적 요소는 최근 만든 가구 ‘3 레그 미니 테이블(3 Leg Mini Table)’의 탁상 다리로 확장됐다. 탁상 위에 올려 두고 손으로 만져보는 사물과 달리 바닥 한편을 딛고 선 묵직한 물건들은 신체와 보다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바람과 먼지, 빛과 그림자가 다녀간 흔적을 닮은 사물들은 이제 커다랗게 자라나 사람의 몸을 품어낸다.
삶의 공간을 되짚어 본다. 그곳에 바람이 들를 자리가 있는지, 햇빛이 머물 틈이 있는지. 필요한 요소를 갖춘 한편에는 반드시 무엇도 아닌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 책상 위 자리도 또 마음속 장소도 그렇다. 그 빈칸의 공백은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도 괜찮다. 쉘위댄스의 방식대로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라도, 먼지가 내려앉은 모양이라도 좋겠다. 어느 날 주워 온 조약돌, 무심코 모아 둔 엽서들, 왜인지 마음이 기우는 그림과 조각들. 매일의 날들에 유연한 상상력과 여유로운 기쁨을 데려다주는 것은 그토록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정성껏 빚어내는 작업은 도리어 무엇보다 쓸모 있는 일이지 않을까. 모두의 장소에, 가득 찬 일상에 한 뼘 빈자리를 내어 두라고 권하는 오브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람을 심듯 빛을 새기듯… 찰나의 아름다움 담다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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